비렴이의 시 쓰기
#비렴이의시쓰기(비렴)
비렴이의 시 쓰기 (1) / 비렴(飛廉)
오늘은 제가 시 쓰는 것에 대하여 조금 얘기를 해볼까 합니다. 기성 시인 분들의 시론이야 사실 다들 비슷한 구석이 있기도 하고 배울 것은 많아 보이지만 어쩐지 피부에 와서 닿지 않는 분들도 꽤 되실 것입니다. 그건 아마 배우는 사람과 가르치는 사람의 태도적 차이에서 발생하는 괴리가 아닌가 싶지요. 그래서 같이 공부하고 있는 제 시론도 혹시나 함께 공부하시는 분들에게 타산지석격의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여 말씀 드려 보고자 합니다.
제 시에 대한 원칙은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1. 시는 시인의 마음을 쓰는 것이다.
2. 글은 읽는 이에게 재미있어야 한다.
시는 시인의 마음을 쓰는 것이다.
상당히 직관적으로 쉽게 다가옵니다. 그런데 사실 여기에 큰 함정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시인의 마음, 아니 마음 이라는 것은 대체 뭘까요? 하는 것이지요. 얘기에 앞서 한 가지 일화를 말씀 드리겠습니다.
대학교를 다니던 때였습니다. 고등학교 동문회 회장직을 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은 간략히 동문회를 마치고 (그 때 제 운영 방침은 어차피 논의할 것도 별로 없는 정식회의는 짧게 그리고 술자리는 길게 이었지요.) 술자리를 가지던 중이었는데 저쪽 구석에서 2명이 얘기를
하다가……
"... 그런데 너는 총각 딱지 뗀 곳이 어디냐?"
"으응.. 형님은 어딘데요?"
"나.. 음 나는 대전인데.."
"대전!!!!"
- 와장창.. 쿠궁 -
그 녀석 대전에 무슨 억하심정이 있었던지 갑자기 술상을 엎어버리는 것이었지요. 다른 많은 선배들이 눈살을 찌푸리고 있을 때에 회장이 가만히 있으면 안되겠지요. 커다란 덩치로 무표정하게 일어나서 스윽~ 하고 움직이려는데, 근처에 있던 총무가 재빨리 달려와서 제 앞을 막아 섰습니다.
"야! 애들 술먹고 그럴 수도 있는 거지 뭘 그러냐."
그 때에 제가 한 대답이 가관 이었지요.
"아! 저 녀석 술 먹고 주사 부리는 거 따끔하게 고쳐 놓지 않으면 나중에 다른 자리에서 저러다가 지 인생 조진다고 그러니 그런 거 고쳐 주는 게 선배 된 도리 아니냐?"
"…… 니 마음은 알겠는데... 그냥 앉아라."
뭐 그러는 와중에 자리는 수습되고 저는 조금 전 제가 한 말이 다시 생각나서 부끄럽고 스스로 볼썽사나워서 한참 킥킥거리면서 술을 퍼먹었지요.
‘단순히 술 잘 먹고 있는데 시끄럽게 굴어서 화가 나 한 대 패줄까 한 것뿐이었는데 어디서 그런 되지도 않은 말이 튀어 나와 버렸던 것일까? 아아! 멀었구나. 멀었어. 사람을 많이 만나고 공적인 위치를 염두에 두고 있었더니 습관적으로 그런 자신의 행동에 대한 합리화를 실행하고 있었던 거다. 진심은 언제나 한 쪽으로 밀어두고 다만 타인의 귀에 듣기 좋고 소위 객관적인 자신의 행동에 대한 상황 설정을 해 놓았던 그런 것이었다. 얼마나 얄팍한가!’
그 이후 제 생활 모토는 '진실하자.'가 되었습니다. 타인에게 그리고 특히 자신에게. 스스로를 속이고 있으면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 그리고 발전이라 할 만한 것이 또한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조금씩 깨닫게 되었습니다.
사람은 자신을 아주 쉽게 속입니다. 내가 지금 바라는 것이 있다 하여도 그것은 진실인가 아니면 내 여러 가지 경험과 환경이 빚어낸 비틀린 것인가 하는 것은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 보는 사람, 즉 시인의 숙제이자 시 쓰기인 것입니다.
흔히들 시인은 어린이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하지요. 그건 다름 아니라 체면과 가식의 아래쪽으로 내려가 마음의 순수를 끄집어 올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곧 진실한 마음이 되며 솔직한 마음이라는 것이지요.
그렇지만
그 마음의 아주 깊은 곳에 내려가서 그걸 퍼 올리면 ‘먹고 싶다’ ‘자고 싶다’, ‘싸고 싶다’, ‘놀고 싶다’ 같은 것들이 올라옵니다. 그것이 나의 본 마음이라고 그런 시를 써야 할까요?
아니지요. ‘나’라는 것은 지금 현재의 ‘나’와 내가 되고 싶어 바라는 ‘나’를 모두 포함합니다. 시를 쓴다는 것은 이 두 ‘나’가 서로 합작하여 그 모두를 포함하여 글로 내려놓는 일입니다.
시는 마음을 그대로 쓰면 되는 것이 맞습니다.
대신
그 마음이 대체 어떤 건지 먼저 들여다 보아야 합니다. 그것을 ‘사유’라고 합니다.
예를 들어 아침을 먹지 않고 출근해서 커피를 마시고 싶다고 해보지요.
그 마음 그대로 한 줄로 쓰면
- 아침 출근하니 따스한 커피가 그립다 -
라고 나오지요. 이것에 대하여 사유해 보면
- 아침을 먹지 않아 몸에 열량이 부족해, 달달한 믹스커피가 땡기는구나. 아내는 어제 늦게 자서 아침에 늦게까지 잠을 잤다. 나오기 전에 다녀오마 인사하며 손을 주물러 주었다. –
라고 나옵니다. 자…… 이제 이것을 시로 써보지요.
- 아침 믹스커피 한 사발에 떠오르는 잠든 아내 얼굴 -
보시면 아시겠지만 딱히 아침을 못 먹은 것에 대한 원망이나 아쉬움 같은 것은 없습니다. 느낌을 그대로 쓴다는 것은 이런 것입니다. 마음의 안 쪽을 뒤져서 그 느낌의 기반이 무엇인가를 파악한 뒤에 그 동안 연습으로 다져진 손에다가 쓰는 것을 맡기는 거지요.
연습에 비해 사유가 떨어지는 글은 화려해 보이지만 실은 난잡하고
사유에 비해 연습이 떨어지는 글은 설명문이 되어 지루하고
사유도 연습도 모자란 글은 공허(空虛)합니다.
오직
사유와 연습이 균형을 맞추어 잘 조화된 글이 빛이 납니다.
[들여다 보지 않고 쓰는 글은 시인의 공허(空虛)를 달래주지 못합니다.]
2번 항목 ‘글은 읽는 이에게 재미있어야 한다.’ 는 다음에 쓰도록 하겠습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족 :
1. 마음 들여다 보는 것은 사실 좀 위험한 일입니다.
2. 그래서 시를 쓴다는 것은 정신적으로 외줄을 타듯 상당히 위태로운 일입니다.
3. 그리고 시뿐만 아니라 예술 계통의 일이 다 비슷합니다.
옮겨온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