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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찾아가는 아홉 갈래 길

墨香 金載基 2016. 7. 22. 12:52

#시를찾아가는아홉갈래길(비렴)

 

시를 찾아가는 아홉 갈래 길 (4) / 최영철(시인)

 

어떤 세계관을 가질 것인가

 

 

글쓰기는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글로 옮기는 작업입니다. 아무리 풍부한 지식과 아름다운 언어들을 알고 있다 해도 창조적인 생각이나 느낌이 없는 사람은 문학적인 글을 쓸 수 없습니다. 논리적이고 실용적인 글을 쓸 수 있을 뿐이지요.

 

그러므로 글을 잘 쓸 수 있느냐 없느냐는 높은 학식과 많은 경험이 좌우하는 것이 아니라 시시각각 자신의 내부에서 저도 모르게 뭉실뭉실 피어오르는 어떤 생각과 느낌들이 많고 적으냐에 따라 좌우됩니다.

 

글쓰는 재주가 있는 사람들을 살펴보면 좀 비정상적이다 싶을 정도로 잡념이 많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 때문에 멍청해 보이기도 하고 건망증이 심하다는 놀림을 받기도 합니다. 여러분 중에 그런 증세를 가진 분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글을 잘 쓸 수 있는 가능성이므로 용기를 가지시기 바랍니다.

 

또 어줍잖은 연속극이나 신문기사 한 줄에도 쉽게 눈시울을 적시는 분이 있는데 그런 분들도 용기를 가지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자신이 남보다 뜨거운 가슴을 갖고 있다는 확실한 증거이며 그만큼 이 세계를 절실하게 느끼고 받아들인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한때 컴퓨터가 시를 쓸 수 있다고 해서 화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사랑’이라는 주제로 시를 쓰라고 지시하면 미리 입력된 사랑과 관련된 여러 단어들을 불러들여서 컴퓨터가 조합하는 방식입니다. 이렇게 하면 사람보다 훨씬 완벽하게 ‘사랑’과 관련된 언어들을 시의 형식으로 조합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유와 느낌이 결여된 공산품의 가치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한 것입니다. 거기에는 혼이 깃들어 있지 않습니다.

 

길에 아무렇게나 놓여 사람들의 발길에 채이는 돌멩이가 있다고 합시다. 보통 사람들은 이 돌멩이를 아무 생각 없이 지나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귀찮은 존재로 여기기도 할 것이고 기껏 관심을 갖는다고 해 봐야 주어다가 어디 써먹을 데가 없을까를 생각할 것입니다. 자기 중심, 더 나아가 인간 중심으로 그 돌멩이를 보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생긴 것입니다.

 

만약 돌멩이를 중심으로 생각하면 어떤 결과가 일어날까요. 무심코 자기를 걷어차는 사람들의 발길이 있기도 할 것이고 흙과 풀이 있는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기도 할 것입니다. 또 대굴대굴 굴러서 자기 짝을 찾아갈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점점 돌멩이의 시각으로 생각을 확대해 나간다면 하찮게 보이는 돌멩이 하나를 통해 이 세계 전체를 이야기할 수도 있습니다.

 

이와 같이 삼라만상의 모든 물질들에게 생명을 부여하면 엄청나게 신비하고 새로운 상상의 세계가 열리는 것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생명과 무생물, 어떤 현상까지를 포함해 세계 전체를 내가 지닌 자아와 동등하게 보는 시각은 글쓰기를 위해서도 필요하지만 자연과 더불어 사는 풍요로운 삶을 위해서도 꼭 필요합니다. 요즘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는 환경문제라는 것도 다 인간중심의 사고방식이 빚어낸 무서운 결과가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이런 범신론적 세계관이 마음만 먹는다고 금방 생겨나는 것은 아닙니다. 대상을 향한 열린 시각, 치우침 없는 균형 감각, 부분을 보더라도 전체 속에서의 관계를 조망하는 태도, 그리고 무엇보다 세계를 향한 무조건적인 사랑이 선행되어야 가능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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