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읽는 재미
#시를읽는재미(비렴)
시를 읽는 재미(3) / 신경림
시 읽는 재미 둘, "머릿속에 그림 한 폭 그려넣을 수 있는 시"
재미난 시라는 것은 어떠한 시라도 머릿속에 뚜렷한 그림 하나를 그리게 만들어 주는 시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런 시를 한편 외운다면 그림을 한 폭 머릿속에 넣어 가지고 다닐 수 있는 효과가 있겠죠.
여러분들이 너무나 잘 아는 박목월 시인의 '윤사월'이라는 시 하나 읽어봅시다.
송화가루 날리는 외딴 봉우리
윤사월 해길다 꾀꼬리 울면
산지기 외딴 집 눈먼 처녀사
문설주에 귀대고 엿듣고 있다
이 시를 읽으면 윤사월 연초록으로 덮인 산이 떠오르고, 노란 송화가루가 날리는 모습, 비록 눈이 멀었지만 아주 아리따운 처녀가 초가집에 앉아있는 모습이 떠오르지 않습니까? 하나의 그림이 떠오르는 것이죠. 이렇게 시를 읽고 머릿속에 그림을 그려넣을 수 있을 때, 시를 읽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 때가 이때라고 할 수 있겠죠.
제가 선배 시인 중에서 제일 좋아하는 시인이 조지훈 시인입니다. 지조론이라는 시를 썼을 만큼 지조도 있고 한학에도 조예가 깊고 학자로서도 훌륭한 분입니다. 시인으로서도 대단하죠. 조지훈 시인과 박목월 시인을 시 하나로 단순 비교하면 시가 무엇인지 잘 나타나니까 얘기를 해 봅니다.
여러분들 잘 아시는 박목월 시인의 '나그네'란 시가 있습니다.
강나루 건너서 밀밭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리
술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원래 이 시의 주제는 조지훈 시인이 쓴 '완화삼'이라는 시와 같습니다. 조지훈 시인이 완화삼이라는 시를 써서 친구인 박목월 시인에게 줬는데, '술익는 강마을에 저녁노을이여'이라는 구절을 박목월 시인이 '술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로 바꿔서 나그네를 썼습니다. 그런데 '완화삼'은 유명해지지 않고 '나그네'는 유명해졌습니다.
왜그러냐 하면 완화삼은 뭔가 멋지고 근사한 말로 가득 차 있지만 머릿속에 그림 하나가 분명하게 떠오르지 않습니다. 반면 '나그네'에는 분명한 그림이 떠오르죠.
'완화삼'을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차운 산 바위 위에 하늘은 멀어
산새가 구슬피 울음 운다
구름 흘러가는
물길은 칠백 리
나그네 긴 소매 꽃잎에 젖어
술 익는 강마을의 저녁 노을이여
이 밤 자면 저 마을에
꽃은 지리라
다정하고 한 많음도 병인 양하여
달빛 아래 고요히 흔들리며 가노니
여기서 목월이 '술 익는 강마을의 저녁 노을이여'를 '술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로 살짝 바꿔서 '나그네'라는 시를 썼는데, '완화삼'을 모르는 사람은 많아도 목월의 '나그네'라는 시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국민적인 시가 됐습니다.
왜냐하면 두 시를 비교하면 나그네를 읽으면 머릿속에 뚜렷한 그림 하나가 떠오르지만, 완화삼을 읽으면 분명한 그림이 떠오르지 않고 어딘지 어슴푸레 무언가 빠져나가는 느낌이 듭니다. 뚜렷한 그림을 머릿속에 그릴 수 있을 때 시에 가까워질 수 있는 이유가 되겠죠. 여러분들도 시를 읽을 때, 일단 그 시를 읽고 그림을 머릿속에 그리는 습관을 붙인다면 시를 읽는 재미가 한결 더해질 것입니다.
옮긴 글ㅡ